장선우는 여러 나라, 도시를 오가며 지내던 어느 날 집 없이 원터치형 텐트를 들고 돌아다니며 사는 무리를 만난다. 그리고 원터치 텐트를 모티브로 `이동 가능한 일시적 안전 공간` 개념을 옷에 대입한 `fun-to-wear` 컬렉션을 시작한다. 그렇게 ‘선우’라는 브랜드가 탄생한다.
이우성은 시인이다. <GQ> <ARENA HOMME+>의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공간, 사람, 본질적인 생각들에 대해 탐구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의 대표다
졸업 학년 때 거리에서 우연히 `원터치 텐트족`을 만났어요. 곧바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알렸어요. “나 이거 할래! 접힌 걸 던지면 옷이 뿅 나타나는 거야! 너무 웃기지!” 그렇게 시작했어요. 거기에 재미있다,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는 진지한 열정이 더해졌어요.
사람들이 이걸 옷으로 받아들여 줄까? 이 옷을 사랑할까? 같은 불안은 없었는지, 혹 여전히 그런 고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을 나누는 기준이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멀쩡해 보이는 옷이어도 아름답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제 옷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제 옷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다고 믿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작가님 옷을 보면 색감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한 벌 한 벌 면밀히 보다보니 특별한 컬러가 쓰인 건 아니더라고요. 형태를 단순화해서 컬러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우`의 실루엣은 강한 컬러를 입었을 때 더 드라마틱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단순한 색들이 모이면 시각 자극이 극대화된다고도 생각해요. 아이돌의 `칼군무`를 볼 때의 짜릿함같은 것이요.
옷을 만들 때, 사람들이 기존의 관념을 잊고 자유롭게 옷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사용자는 고려하지 않는 편인가요?
가끔 누군가의 옷장에 선우의 옷이 들어가 평범한 애들 다 끌고 나와 함께 춤추는 상상을 합니다. 제가 바라는 사용자는 실용적인 기준으로만 옷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들이에요. 호기심을 품고 다양한 형태의 옷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함께 춤추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본인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적극적인 사람부터 소장의 기쁨을 즐기는 분들까지 다양합니다. 컬렉션의 대부분을 구입한 해외 고객으로부터 최근 연락이 왔어요. 그간 저와 팀원들은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요. 백발의 노부인이었어요. 제 옷을 입고 생활하는 일상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너의 옷을 소녀 소년들만 사랑하는 건 아니야`라는 메시지와 함께요.
올해 초 성수동에서 열린 전시 <fun-to-wear>를 재밌게 보았어요. 보았다기보다 경험했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 것 같습니다. 옷을 입어볼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에 전시 제목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옷이 왜 재미있어야 하지? 물론 저 제목은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의 `퍼스널리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진지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Fun-to-wear`는 `Ready-to-wear`에 대한 반항심이기도 해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전시장에서 본 룩북도 흥미로웠어요. 옷을 입은 모델이 꼭 외계인처럼 보였어요. 물론 외계인을 본 적은 없지만요. 더불어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이 옷은 일반인이 입을 수 없다, 꾸미고자 하는 외계인만 입을 수 있다. 이런 판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 그렇다면 외계인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적극적인 고객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선우의 옷은 고객 사이즈에 맞춰 주문 제작됩니다. 외계인도 당연히 입을 수 있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외계인이 옷을 입고 있다기 보다, 옷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옷의 관념을 `깼는데` 옷이 무엇을 `가둔` 것 같았어요. 이 옷이 가진 파괴적 자유를 존중하여 드리는 질문입니다.
아! 저는 옷의 형태를 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옷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예요. 티셔츠나 스커트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구조를 접었다 펼칠 수 있게 만든 것뿐이에요. 파괴하지 않았고 굳이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옷을 설명한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요?
아는 맛에 아는 맛을 더해 색다른 맛을 냈으니 `바게트에 올린 휘핑크림 같은 옷` 정도 어떨까요?
오, 좋아요. 6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열리는 그룹전에 참여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전시에 옷의 형태를 기꺼이 전복하는 작가들이 참여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존 형태를 벗어난 패션에 대해 보수적이에요. 그래서 저에겐 전시장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반갑습니다.
예술적인 옷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건 아니에요. 실험을 통해 형태나 구조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 결과물이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옷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영화는 재미있으면 됩니다. 재밌으려고 보는 거니까요. 옷은 재미로 충분할까요?
영화도 다양하잖아요. 재미를 추구하기도 하고 지극히 예술적인 경우도 있죠. 저는 해석의 여지가 있고 직관적이고 솔직한 걸 좋아해요. 옷도 마찬가지고요.
룩북 크레딧: 사진 김문독 @kimmoondog 헤어/메이크업 은서 @xoxov3 모델 최예주 @y_ejooo 이예리 @yellkist
전시 크레딧: 공간 더 그라운드 성수 @theground_official @ryanyoonstudio 디렉터 연누리 @nurigiela
전시 사진 크레딧: 유경오 @photoyou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