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특한 패션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매체는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난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마치 우리의 ‘본질’은 ‘엣지’라고 외치는 것 같다. 오유라는 이 기적같이 도전적인 매체의 디렉터다. 그녀는 옷에 인격을 부여한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 부편집장. 패션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인물, 사건, 장소, 문학 가리지 않고 탐닉한다.
오유라 <데이즈드 & 컨퓨즈드> 부편집장
안녕하세요, 오유라 에디터님. 《OLO MAGAZINE》 독자들에게 간단히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글과 패션을 좋아해서 패션 매거진 기자가 되었습니다. 쉼 없이 일한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싫어하는 게 많고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닌 INTP 유형인데, 유일한 관심사이자 취향이 직업으로 이어져 기쁘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이제는 제 일에 제법 사명감도 느낍니다.
오랫동안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이하 《데이즈드》)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데이즈드》란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온라인 기반이 없던 때에는 매달 일정 기간 마감에 쫓기며 종이책 출간에만 집중했습니다. 이제는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해져 패션을 매개로 대중과 실시간으로 공감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은 패션 비주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데이즈드》 화보나 영상을 보면 그로테스크함이랄까, 위트랄까, 굉장히 도전적인 감성이 드러납니다. 한두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질감이 있어요. 최근의 송강호 커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를 거론하는 게 의미가 없죠. 질문이 좀 포괄적입니다만, 이런 정서들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요?
《데이즈드》에서 일하며 많은 선배와 팀원 속에서 지냈습니다. 우리의 공통된 생각은 《데이즈드》는 독립적이고, 혁신적이고, 비판적이며 때론 좋아하는 걸 가감 없이 보일 줄 알는 순진무구함(naïve)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고, 다수의 취향에 동조할 필요 없다. 물론 상업적인 일도 합니다. 《데이즈드》만의 방식으로요. 광고 작업은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처럼 패션계에서 비교적 소외된 국가의 신진 디자이너 컬렉션을 소개하고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줍니다. 《데이즈드》라는 가치를 함께 구현하는 사람들과의 팀워크가 저에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매달 에디터, 아트 디자이너, 영상 디렉터…… 모두가 자기 개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관심사를 공유합니다.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죠. 그러다보면 색다른 이미지, 의도 이상의 비주얼이 나와요. 혼자 해내려 할 때보다 풍부해지죠. 《데이즈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비전을 덧칠하다보니 특별함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데이즈드》 패션 비주얼이 동시대 패션 신의 지루한 모습들을 나름의 기조를 유지하며 독특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옷은 새롭지 않은데 화보는 옷이 지닌 의외의 부분을 드러낸달까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요? 오유라 에디터는 옷의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싶은가요?
저는 늘 팀원들에게 두 가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는 《데이즈드》의 결에 맞는 인간상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저희의 어젠다라고 할 수 있는데요, 《데이즈드》를 즐겨 보는 사람은 어떤 취향을 가졌고 옷차림은 어떠하며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합니다. 미래의 연인을 상상하는 것처럼 《데이즈드》의 이상형을 떠올리는 거죠. 이상형과 무언가 공유할 수 있고 취향이 들어맞으면 그보다 완벽한 커플은 없을 거예요. 매력적인 사람을 어떻게든 돋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미지를 만듭니다. 다른 하나는 옷마다 인격을 부여하는 거예요. 앞서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디자이너가 고심해서 만든 옷에 어떤 환경을 더하면 보다 풍부한 이미지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죠. 옷에 이야기를 입힐 수도 있고, 개성 강한 인물을 입힐 수도 있고, 헤어와 메이크업만으로 다양하게 변주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죠?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그리고 킴 존스.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언제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여 다음을 기대하게 합니다. 쇼를 비롯해 마케팅, 캠페인 등을 볼 때 현재를 포용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브랜드라 여겨져서 좋아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지점도 좋고요. 예(Ye, Kanye West)가 괜히 발렌시아가의 패밀리일까요. 《데이즈드》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꼽으라고 해도 뎀나의 발렌시아가라고 답하겠어요. 그리고 킴 존스는 루이 비통 맨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때부터 패션의 협업(2017 S/S 루이 비통 맨즈 X 슈프림 컬렉션)을 가장 파격적으로 해낸 선구자입니다. 그의 첫 디올 옴므 컬렉션을 기억하세요? 카우스가 디자인한 ‘BFF(best Friend Forever)’란 애칭을 가진 캐릭터를 엄청난 규모의 피규어로 제작, 분홍과 검정 장미로 장식해 쇼장 한가운데 배치했죠. 또 윤 안(엠부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주얼리 라인을 맡겼고(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스트리트 브랜드로만 알던 스투시와의 협업을 통해 스투시의 창립자인 션 스투시를 아티스트로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죠. 저는 그를 진정한 전략가라 말하고 싶은데요, 패션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경계를 계속해서 넓히고 있어요. 저는 뎀나의 혁신과 킴 존스의 전략을 본받고 싶어요.
촌스러운 질문이지만, 본인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화보 중에서 인상적인 걸 말해주세요.
답하기 곤란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네요. 대부분 좋은 의견을 받은 화보는 기획자와 이를 이행하는 사람이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아 탄생한 것들이에요. 저는 판을 까는 사람이거든요. 셀럽이든 모델이든 화보를 통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게 돕습니다. 그들의 심미안을 통해 구현되는 《데이즈드》가 좋아요. 그런 일에 제 진정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피처 에디터로 일하던 대략 10년 전, 2012년에는 대부분의 독자 그리고 브랜드 담당자들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화보를 보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세련됨과 아름다움은 주관적입니다만, 낯선 감각을 넘어선 난해함이나 극렬히 호불호가 나뉠만한 기준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어요. 오유라 에디터도 그때 어시스턴트를 하며 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독자나 브랜드 담당자들의 반응을 통해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주세요.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런 시선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있다면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급진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안정적으로 흐름을 따라가는 브랜드도 있죠. 저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 너무 성급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데이즈드》의 태생인 영국에서부터 이어져 온 DNA 같은 건데요, 십 년 전의 《데이즈드》를 지금 보아도 파격 그 자체입니다. 창간호가 마돈나였는데 센세이셔널한 옷차림과 사진의 톤, 타이포그라피를 확인할 수 있어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느 매체들은 시각적 끌림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데이즈드》는 그렇지 않았어요. 책의 아트 디자인과 커버, 그 안의 콘텐츠, 그리고 조그만 지면의 인터뷰이조차 평범하지 않았죠. 디테일 하나하나가 잡지는 이래야 한다는 보통의 가이드를 싹 무시하고 있어요. 결국 지금 우린 인스타그램처럼, 더 파격적이고 시각적으로 무한히 열려있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이미지가 모든 걸 대변할 때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데이즈드》는 창간된 시점부터 이미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배웠고, 현 트렌드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는 계속 새로운 패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오유라 에디터에게 새로운 이미지란 어떤 것인가요?
반항, 그리고 외로움. 종이 잡지의 수요가 점점 줄고 있다는 건 무척 슬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책이 지닌 힘을 믿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책의 가치를 십 년 뒤에도 옹호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과감하고 빠르고 때론 무모해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따라가면서 동시에 책의 가치를 잊지 않는 게 패션지 에디터로서의 제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곧 반항이 될 수도 있고, 때론 고독하겠죠. 그런데 저는 이걸 힘의 원천으로 여기려고요. 존폐 위기를 늘 염두에 두어야만 계속해서 달릴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이른바 창의력의 원천 같은 거요.
요즘 제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은 애국심입니다. 패션의 중심은 파리를 기점으로 한 유럽이었는데 케이팝이 전 세계를 아우르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누가 뭘 입었는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셀럽 마케팅이 중요해졌습니다. 패션위크에 셀럽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브랜드는 엠버서더를 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 중심에 케이팝이 있고요. 저는 이 점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동양인이 패션의 중심에 있다는 거. 그렇게 잽을 날리며 시작하는 거죠. 부끄러운 말이지만 최근에야 애국심이 생겼고, 승부수를 걸만큼 지금의 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싶어요. 《데이즈드》는 패션과 현대 문화 신에서 끊임없이 교량 역할을 할 것이고, 레이더를 세워 발 빠르게 우리의 잠재력을 알아낼 것입니다. 동시에 그간 해왔듯이 아티스트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다 보면 한국의 패션이 좀더 풍부해지지는 데 우리도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SNS에 올라온 본인 사진을 보면, 매우 관종 같고, 매우 전문 모델 같아요. 멀쩡한 포즈로 찍은 사진이 거의 없더라고요. 왜 그러는 건가요? 그 모습들도 다 당신이 진행한 화보의 이미지들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
최고의 칭찬이네요. 제 작업물에 제가 투영되었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네요. 지금은 무엇보다 개성이 드러나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몇만 명이 늘고, 그저 내가 좋아서 춤춘 영상이 수천만 조회수를 얻기도 하고, 끝내주게 잘 먹을 수 있다면 스타가 되기도 하죠. 다변화된 세상에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많은데 그걸 취하지 않을 사람이 있나요.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었으면 합니다.
‘룩’에 굉장히 보수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할뿐 아니라 고집이 세서 도무지 다른 방식으로 입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고, 유니크한 패션 화보를 보면 고개를 마구 젓는 사람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오유라 에디터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그러라고 해요. 싫어하는 건 관심의 또다른 표현이고, 애정이 있어야 발현되는 감정이라 생각하거든요. 좋든 싫든 그 사람의 감정을 움직였으니까 그걸로 됐어요. 모두가 만족할 만한 패션이라면 얼마나 뻔하고 재미없을까요. 무관심보다 차라리 엿을 날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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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드 & 컨퓨즈드> 부편집장. 패션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인물, 사건, 장소, 문학 가리지 않고 탐닉한다.
오유라 <데이즈드 & 컨퓨즈드> 부편집장
이우성은 시인이다. <GQ> <ARENA HOMME+>의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공간, 사람, 본질적인 생각들에 대해 탐구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의 대표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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