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현의 시선에서 스웨터가 갖고 있는 물성과 스웨터를 입는 사람들의 일상 단편을 담았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무튼, 스웨터』 (제철소, 2017)를 썼습니다.
김현 시인
“겨울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마음에서 그런 마음으로 건너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나는 ‘스웨터의 마음’이라고도 부른다.”
시간의 흐름
촛불 켜는 밤. 그가 써왔던 시의 제목은 이제 잊혔지만……. 그해 겨울 그이를 구성하던 것. 시가 적힌 종이 뭉치와 검은 금속 테 안경과 더플코트와 팥죽색 목도리 그리고 붉은 실로 짠 아름다운 문양이 들어간 검은 카디건 스웨터.―여러 개의 은색 단추에 음각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차례로 새겨져 있던.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던 스웨터. 그의 배꼽에서 그의 가슴까지 날아오르기 위해 새는 날개를 펼치고. 그러나 그는 날개를 접으며 가슴에서 배꼽으로 내려앉는 새라 하였고. 비상하는 새와 착지하는 새. 우리가 꾸는 꿈은 이토록 다른 것. 같은 형상을 보고도 다르게 느껴 쓰게 되는 것이 시이기도 하겠고.―따뜻한 차와 훈김이 서린 안경알. 차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던 눈동자. 안경을 벗어서 들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작은 글씨로 인쇄된 시를 읊던 낮고 차분한 목소리. 희고 길고 (만질 수 없던) 부드러운 손가락. 나는 그에게서 완성된 겨울 이미지를 마음의 서랍에 놓아두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종종 꺼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암흑 속에서 홀연히 켜지는 촛불.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하고. 그 시가 또한 바람이 되기도 하고. 바람결에 촛불이 하늘거리는 것을 느끼며 배가 붉고 날개가 검은 새 한 마리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이가 입었던 카디건 스웨터는 누구에게로 내려앉았을까?
그이가 쓴 시에는 새도, 새의 날갯짓도, 시간의 형상도 없었지만, 단 한 가지가 머물러 있었다. 마음. 그의 시에 마음이라는 언어는 없었지만. 마음은 시에 말없이 담기는 것. 그의 시에서 그의 마음을 짐작하려고 애썼더랬다. 그 역시 내 시에서 나의 마음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이는 그이대로, 나는 나대로 마음에 선을 그으면서, 그 별자리들 덕분에 우리는 제법 환한 겨울밤을 보냈다. 그 시절 그이와 내가 좋아했던 시의 제목은 ‘겨울 아이들을 위한 노래’이고. 그건 자끄 프레베르가 오래전에 쓴 시다.
겨울밤
큰 눈사람이 달리네
큰 눈사람이 달리네

나무 파이프를 입에 문 눈사람
추위에 쫓기는
큰 눈사람

그는 마을에 다다르네
그는 마을에 다다르네
불빛을 보더니
간신히 마음 놓네

어느 작은 집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가네
어느 작은 집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가네
몸 녹이려고
몸 녹이려고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올라앉네

그는 단번에 사라졌지
물웅덩이 한가운데
파이프만 남았네
파이프만 남았네
그리고 낡은 모자도…
그이도 나도 큰 눈사람이 남긴 웅덩이를 커다란 마음이라 부르지 않았다. “모자와 파이프를 잘 말려서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두겠어. 작은 집에 사는 작은 사람을 위해.” “그런 사람에게 너의 스웨터가 잘 어울리겠고.” 우리가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모든 눈사람은 작은 눈덩이에서, 모든 스웨터는 하나의 코에서, 모든 커다란 마음은 작은 마음에서, 모든 눈은 단 하나의 눈송이에서, 모든 이야기는 한 글자에서, 모든 그리움은 단 한 사람이 떠났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라고 말하게 되고. 그 말 때문에 홀로 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올겨울에도 나는 종종 그리워했다. 마음이 차서 도톰한 아란 스웨터를 껴입고. 창밖으로 하나둘씩 날리기 시작하는 눈송이를 보면서. 굵어진 눈발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이 서린 유리창에, 아무도 보지 않는데 나 혼자만 아는 한 글자를 그려 넣으면서. 화단을 뛰어다니는 겨울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궁금해했다. 살아 있다면(녹지 않았다면). 그이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이가 겨울이면 찾아보는 영화, 그이가 겨울이면 챙겨 먹는 음식, 그이가 겨울이면 읽는 책, 그이가 겨울이면 꼭 가는 곳, 그이가 겨울이면 자주 마시는 차, 그이가 겨울이면 즐기는 술, 그이가 겨울이면 입고 또 입는 옷… 그이는 오늘 어떤 스웨터를 챙겨 입었을까. 이 겨울에 누구의 마음으로 날아갔을까. 시가 되었을까. 불을 밝혔을까. ‘히말라야’라고 불리는 에메랄드빛 털실로 뜨개질하듯. 겨울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마음에서 그런 마음으로 건너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나는 ‘스웨터의 마음’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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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무튼, 스웨터』 (제철소, 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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