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바지 못 입게 해?
어머니는 민주화 운동의 한 부분으로 생활 한복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브랜드 질경이우리옷을 론칭했다. 나는 한국적인 옷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안고 살았다. 나에겐 지긋지긋한 이 입기 싫은 옷(생활 한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손수 지어준 생활 한복이 싫었다. 보통 사람들이 입는 옷과 다르고 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처럼 유명 브랜드의 기성복을 입고 싶었다. 그쪽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모두 생활 한복을 입었고,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공공장소에 가는 일이 부끄럽기도 했다. “아니 도대체 왜 청바지를 못 입게 하고, 나이키 신발 하나를 안 사주고 그래?”라는 식의 반항심은 성장기의 나와 늘 함께했다. 그래서 “난 부모님보다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어”라며 다소 대책 없이 진로를 결정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장르, 생활 한복
획기적인 디자인이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단번에 이해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조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실체가 없던 디자이너의 감각이 선택의 굴레 속에서 실물이 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생활 한복 또한 그렇다. 비록 이제 나는 생활 한복을 입지 않지만, 생활 한복이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다는 것과 생활 한복이 한국 의복의 아름다운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상당히 창조적이며 획기적인 옷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생활 한복은 전통 한복이 현대 사회에 어울리게 진화한 것이다. Savile row (새빌 로)의 테일러가 영국을 상징하는 옷이 된 것처럼 전통 한복은 시각적 요소를 넘어 가장 한국적인 옷이라는 개념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며 입지를 다졌다. 사대주의에 물들어있던 어릴 적 시각에서 벗어나, 공부를 통해 이 분야의 자아가 형성되면서, 보다 객관적으로 생활 한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복식 문화는 그 형태와 개념을 이루는 성격이 대단히 시원시원하며 역사적 내러티브를 가진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복만큼 자연을 생각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옷을 나는 세상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옷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최근엔 한복에 담긴 의미를 풀어, 옷으로 인해 지구가 겪고 있는 문제와 옷 때문에 사람들이 겪는 건강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한복이 품은 의미를 곱씹다 보면 새로운 방법이 보인다.
한국의 옷은 해방적이며 열린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생태학적 색채 개념이라 볼 수 있는 오방색을 사용한다. 낡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낡음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한국 옷의 조형 정신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생과 순환의 원리’라는 바탕에 ’생태학적 세계관’을 더하여 문화적 특성을 미적으로 계승했다. 옷을 만들고 남은 원단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어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인다. 넉넉한 품과 구조로 옷과 인체 사이에 공간을 넣음으로써 옷으로 몸을 구속하지 않는다. 사람의 건강을 생각한 옷, 자연과 인체의 순환 구조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도리어 ‘낡음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한국 옷의 조형 정신이다.
비대칭 구조의 저고리와 바지는 천을 몸에 감싸서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옷이다. 체구와 상관없이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몸이 변해도 옷을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프리사이즈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몸은 대칭이기 때문에 비대칭의 옷을 입으면 어색하게 보일 것 같지만, 비대칭인 동시에 균형감을 이루는 것이 한국 옷 특유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한복의 형태적 특성을 하나씩 뜯어보다 보면 우리 선조들이 옷을 대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선조들의 의복에는 사람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는 유연성과 최소한의 소비로 가장 효율적인 옷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고민의 흔적이 담겨있다. 한국의 옷은 몸을 보호하고 꾸미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며, 옷이 사람의 건강에 기능하게 하고, 옷으로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
생활 한복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는 걸 안다. 한때의 기이한 유행으로 보거나 학생 운동하던 꼰대들의 옷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선으로 등을 돌리기에는 그 속에 담긴 옛 사유들이 너무나 귀하다. 생활 한복을 보다 현대적으로 풀어내려는 디자이너들의 노력만이 필요할 것이다.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옷이 아주 외면받을 리 없다.
등을 돌리기에는 그 속에 담긴 옛 사유들이 너무나 귀하다.
단순한 디자인, 트랜드 흐름에 따라 쉽게 소비되고 그만큼 쉽게 버려지는 옷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옷 쓰레기가 넘쳐나고 그것이 환경 오염의 치명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더 외면해서는 안 된다. 버려진 옷들을 쌓아둘 곳이 없을 때까지, 버릴 곳이 없어 옷더미가 쓰레기장을 흘러넘칠 때까지 지켜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K-something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복에 담긴 정신을 조금만 되새겨도 우리가 옷을 대하는 태도는 아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옷을 통해 자연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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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누리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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