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조, RIPE, 더 이탈리안 클럽까지. 파스타의 숨은 고수 김호윤 셰프.
음식은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생산부터 외식의 경험까지를 소비하는 것.
각 잡힌 하얀 제복, “옷차림보다 중요한 게 많아졌어요."
20년째 브랜딩 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은 패션 D2C전략팀에서 디지털패션을 고민 중. 틈새의 아름다운 쓰임과 기쁨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을 씁니다.
김세연 브랜딩 전략 & 콘텐츠 크리에이터
창밖에 석촌호수가 펼쳐진 소피텔 호텔 2층은 아침 햇살을 받아 구석구석 크리스피하게 빛나고 있었다.
“3대가 같이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이 편하게 드실 수 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식재료, 제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죠.”
건강한 분위기의 가족 구성원으로 밝게 자라온 그와의 대화는 깊이 있었고 진지했으며 진한 풍미마저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자 좋은 셰프인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편협함마저 사랑한다고 말한다. 머랭처럼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옷을 입고 편협함과 편협하지 않음의 경계를 생각한다는 그의 셰프된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일까?
#1. 요리의 영감 ― 기억
요리를 하며 특별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헛웃음이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상상 이상의 맛이 나왔을 때. 그런 헛웃음이 손님에게도 전해지는 그 순간 희열을 느껴요.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나요? 어디에서 요리의 영감을 받는지도 궁금해요.
요리의 영감을 행복했던 기억에서 많이 찾으려고 했어요. 음식을 통해 나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해요. 아버지가 퇴근 후 사 오신 치킨같은 것이요. 그 기억을 담아내려고 ‘아버지의 치킨’이라는 요리를 만들었어요. 반으로 자른 오리의 살을 모두 발라서 닭다리 모양으로 바삭하게 구워냈죠. 오리 외에 필요한 식재료는 팀과 이른 아침 농장에 가서 손수 따왔어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철 식재료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셰프님은 어린 시절 느낀 즐거움을 요리에 담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요리의 중요한 부분이죠. 요리할 때 고수하는 디테일 혹은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살다 보면 고정관념이라는 게 생기는데, 저는 일반적인 생각에 휩쓸리지 않을 어느 정도의 편협함을 사랑합니다. 그게 프로페셔널해지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
편협함을 사랑한다는 표현이 솔깃하네요. 말씀하시는 어느 정도의 편협이란 무엇인가요?
제 편협한 고집을 꺾지 않으며 경계에 서는 것이요. 우리나라에선 보통 단맛이 나는 게 비싸고 좋은 딸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 딸기는 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왜냐하면 달지 않아야 향이 사니까. 흰 부분이 있는 딸기가 훨씬 맛있습니다. 딸기는 향이 좋아야 한다는 제 편협함 덕에 단맛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달기만 하고 향은 없어? 그럼 이건 못 써, 당도가 떨어져도 향이 좋다면 이건 오케이. 다른 작물을 고를 때도 비슷해요. 그래서 식재료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가진 잘못된 상식이 꽤 많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셰프님이 생각하는 요리는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식문화, 소비문화의 일부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리사는 감독과 같습니다. 외식의 경험을 담당하는 감독이요. 감독의 메시지가 좋고 배우의 노력이 보일 때 관객이 영상을 더 아름답게 느끼고 크레딧의 여운을 오래 기억하는 것처럼, 식재료에 대한 고마움과 생산자의 노력, 요리에 들이는 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셰프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제철 음식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고, 좋은 농산물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요리하고, 맛의 희열을 선사할 때 즐거움을 느끼고 거기서 일의 의미를 찾습니다.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라 식문화를 소비하는 곳,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어떤 기억을 남기길 바라나요?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주방이 펼쳐집니다. 열린 공간에 대한 경험을 시작으로 벨벳 메뉴판의 부드러운 촉감, 접이식 메뉴판이 펼쳐지는 구조, 음식 이름보다 먼저 배치한 요리 철학 등……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2. 찰나의 감각 ― 간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역시 맛이죠. 더 깊이 들어가면 ‘간‘입니다. 염도는 매번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파스타는 오일, 물(육수), 탄수화물(면)을 하나로 만드는 건데 하나가 아닌 걸 합쳐놓는 거라서 조화를 위한 큰 노력이 필요해요. 면이 불으면 안 되니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신경을 써서 최고의 순간을 찾아요. 물성 안에 플레이버를 가두는 거죠. 그게 간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맛이요. 좋은 맛은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요. 그래서 셰프는 감각적이야 해요. 굉장히 동물적으로.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을 융합하는 감각을 유지하려면 예민해야 할 것 같아요. 본인을 음식에 비유한다면요?
육수 같은 사람이요. 베이스가 되는 육수. 탁하게 끓이는 육수는 별로 없어요. 보통은 맑게 끓여요. 정제되어 있어야 하니까. 다양한 맛이 적절하게 녹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곳 역시 육수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자주 찾을 수 있는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거슬리지 않고 뻗대지 않는 곳이요. 30대 후반에 느끼는 요리란 게 그래요. 필요한 것들이 잘 녹아있되 과하지 않은 것. 40대에는 더 담백해지고 싶어요.
#3. 경청의 방식 ― 옷
셰프의 복장에는 정갈한 의식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셰프님에게 워크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10년 넘게 권위를 상징하는 옷을 입어왔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각 잡힌 하얀 옷으로 예의를 표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백퍼센트 면으로 제작된 기존의 유니폼은 땀에 젖으면 잘 마르지 않고 무거워져서 요리할 때 불편해요. 다음 세대가 이런 걸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스트의 옷차림보다 중요한 게 많아졌어요. 식기류, 메뉴 구성, 음식을 찾아 주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이요. 과거 셰프의 옷이 지위를 뜻했다면 이제는 실용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어요.
요리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옷으로 연결되네요.
요리는 인문학이에요.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 나라의 인문학은 그 나라의 요리로 대변되죠. 그래서 요리 문화는 의복 문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퀴진마다 옷이 달라요. 이곳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 적지 않고 ‘Osteria de Seoul’이라고 적었어요. 서울에만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옷도 현재에 어울리는 한국형 옷을 만들었어요.
입고 계신 워크웨어는 가볍고 편안해 보입니다.
그동안 고민했던 점을 모두 담아 에이몬트(a mont)와 함께 워크웨어를 만들었어요.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셰프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꼼꼼하게 고려했죠. 앞치마와 티셔츠를 코디했는데 티셔츠의 앞판은 뜨거운 물이나 기름이 튈 때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방수 재질을 썼어요. 사이드 부분을 메시 처리하여 쾌적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요. 왼쪽 소매에는 펜꽂이 포켓이 있습니다. 앞치마는 초경량이에요. 들어보세요. 요리사들이 거북목이 많아서 적은 무게도 부담이 될 수 있거든요. 브랜드 로고는 일부러 어깨에 두었습니다. 워크웨어를 입는 순간 소속감과 자부심이 느껴졌으면 해요. 뭘 입느냐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에이몬트(a mont)
휴머니티로 접근하는 김호윤에게 셰프의 복장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치를 생각하는 깨끗한 경청의 한 방법이었다. 그는 요리를 통해 식재료가 품은 이야기를 전하고 삶의 일부를 요리에 녹이며 언제든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기를 기다린다.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끝이 같은 경험 안에서 하나의 감정에 다다르기를 그는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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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브랜딩 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은 패션 D2C전략팀에서 디지털패션을 고민 중. 틈새의 아름다운 쓰임과 기쁨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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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발전에 일조하려는 셰프겸 사업가
김호윤 셰프 & 사업가
먹고 마시고 바라봅니다.
김민주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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