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4분 읽기

해방촌,

와인이 잠 깰 때

콘텐츠 크리에이터 황문정 (@the.pater)
와인 크루 ‘각일병클럽‘으로 활동 중입니다.

와인은 취할 때까지, 해방촌의 떼루아를 더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맥주가 있다면 나에겐 와인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와인에 대한 내 애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이냐 술이냐’하는 인류의 오랜 고민에 일찍이 답을 내린 나는 이른바 ‘가산탕진형 미주가’다. 초저녁이나 대낮에 와인을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을 가벼운 와인으로 시작한다. 술을 즐기는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와인 바, 공원, 친구 집, 비행기 안, 침대 위, 때론 길에서도 마신다.

‘문득 공기는 어떤 맛을 낼까?’

나의 인생 와인

와인을 즐기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나와 잘 맞는 와인, 함께 취해주는 사람, 약간의 고독이다. 보통은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 찾기를 어려워한다. 가산탕진형 미주가답게 나는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다 어느 날 ‘나의 와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와인에 빠지게 한 와인, 내 인생 와인은 바로 Pacina, Il Secondo 2016이다.

3년 전 여름의 초입이었다. 친구와 가벼운 와인을 한 병 마시고 다음으로 Pacina, Il Secondo 2016을 선택했다. “공기가 들어가 이제 딱 마시기 좋아요.” 소믈리에가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문득 ‘공기는 어떤 맛을 낼까?’ 조금 의문스러웠는데 한 모금을 들이키자 알 수 있었다. 병 속에 빨려들어간 그날의 습도가 분명히 느껴졌다. 눅눅한 동시에 깔끔한 맛, 이게 뭘까. 맛에 놀라서 잠깐 생각이 멈춘 듯했다. 와인이 대단히 매력적인 술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안타깝게도 그 뒤로는 Pacina, Il Secondo 2016에 담긴 미묘한 공기의 맛을 다시 느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 예외적인 경험을 선사한 이 아름다운 와인은 내가 다른 와인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어떤 기준이 되었다.

장소가 주는 기억

그날 나와 Pacina, Il Secondo 2016이 만난 곳은 해방촌 캐주얼 식당 ‘와일드덕칸틴’이다. 검은색 장막만 없을 뿐 나에게 그곳은 그래서 와인의 카바신전이나 다름 없다. 덕분에 해방촌 언덕을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다른 곳에서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든, 나는 회귀하는 연어처럼 다시 그곳을 찾고, 와인을 마신다. 어쩌면 ‘나의 와인’을 처음 만난 그날의 공기 맛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와 잘 맞는 와인 리스트를 갖춘 그곳이 어느덧 좋은 술친구처럼 느껴진다.

존재감을 유지하는 법

테라스에 앉아 해방촌 거리를 바라볼 땐 평소엔 선택하지 않는 특별한 와인에 끌린다. 여러 와인을 마셔 본 결과, 산뜻하고 짭짤한 오렌지 와인, Vino Bianco “A DEMÛA NOVEMESI” - CASCINA DEGLI ULIVI이 제격이다. 짜릿하고 떫은맛이 혀에 닿는 동시에 꽃과 배 향 밑으로 쿰쿰한 냄새가 올라온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낯선 감각으로 다시 해방촌의 공기와 함께 잔에 와인을 따른다. 그런 순간에 나는 내 존재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탕진하며 해방촌에서 와인을 마셔대는 이유다. 이것이야 말로 이곳의 ‘떼루아’ 덕분 아닌가!

좋은 사람들은 술에 매번 다른
공기를 불어넣고, 진솔하고 유
쾌한 풍미를 얹어준다.

일상에 와인이 가져다 주는 의미

와일드덕칸틴에서 만난 건 좋은 와인만이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기분 좋게 함께 취해줄 여러 사람을 만났다. 술 취향은 각자의 생김새만큼이나 다르지만, 다른 와인을 앞에 두고서도 비슷한 감정과 흥취를 나눌 줄 아는 이들이다. 우리의 허심탄회한 분위기가 와인이 가지는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은 술에 매번 다른 공기를 불어넣고, 진솔하고 유쾌한 풍미를 얹어준다. 그런 자리가 일상에서 누릴 만한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케미가 잘 맞는 이들과 음주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각 일병 클럽’이라는 솔직하고 직관적인 이름이다.

조금 고독하거나, 작은 일도 순조롭게 풀리지 않아 삐걱거리는 날이 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할 때,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문득 낯설 때, 신경이 곤두서고 내 마음에 내가 쫓길 때, 와인은 묵직한 닻과 같은 친구가 되어준다. 일과를 끝낸 늦은 밤의 와인 한 잔은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게 한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한 와인도 상관없다. 와인을 넘기며 그 맛에 잠시 집중하는 것으로 일상 속 항시 존재하는 약간의 고독과 불안이 해소되는 듯하다.

와인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

와인에 박식한 사람은 많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맛을 찾아 떠돌다 와인에 정착한 사람일뿐이다. 술 가운데 와인을 가장 좋아하고, 라벨을 읽으면 어떤 맛이 날지 ‘대충’ 짐작이 가능한 정도다. 그러나 나는 그날의 공기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맛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술 조금 더 마셔본 술친구로서 슬쩍 와인을 건네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모든 사람이 와인에 곁들일 자신만의 공기를 찾길 바란다. 와인을 함께할 모임을 결성해보면 더 좋겠다. 코로나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두세 명이 단출하게. 모임 이름을 괜히 심각하게 궁리해보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와인은 취할 만큼 충분히 마시는 게 좋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취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마셔보는 게 와인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일 수 있다.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로 와인에 대한 예찬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와인을 마시면 흥취에 젖어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소송에 이기고, 행복해지고, 친구들에게 너그러워진다”(<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조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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