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하울` `꼭 사야 하는 추천템` `왓츠 인 마이백` 등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하려는 콘텐츠가 SNS와 유튜브 플랫폼에 넘쳐난다. 그 물건들이 얼마나 남다른 가치를 지녔는지 설명하고, 유의미한 소비였음을 설득하려 한다. 이런 종류의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된다는 건, 그만큼 찾아 즐겨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테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을 `손민수`하고, 아이템을 찾기 위해 정보의 바다를 휘젓는 게 유행인 요즘이니까. 때문에 취향은 유사해지지만 그걸 알아챌 새도 없이 `다름`을 흉내낸 스타일이 타임라인을 뒤덮는다. 그래서일까. 소유해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소비를 부추기는 극성맞은 자본주의에 나는 꽤 시니컬하고 시큰둥해졌다. 가진 게 별로 없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패션 에디터가 직업인 사람의 다소 모순적인 가치관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2년 전 미니멀 라이프를 예찬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내 최고 패션지에서 최신 트렌드를 전달하고 소비를 유도해야 할 패션 에디터가 쓴 `비움의 삶`이라니, 기사를 읽던 팀 선배가 “말이 되냐”며 코웃음을 쳤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는 쏟아지는 신상품과 트렌드를 따라 급변하는 패션계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부지런하게도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입지 않는 옷과 쓰지 않는 물건으로 포화 상태가 된 방에 들어서며 `현타`를 느낀 것이다. 때마침 비우는 삶에 대해 말하는 몇 권의 책을 접하고 본격 미니멀 라이프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미니멀한 삶을 꿈꾸면서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욕을 잠재우지 못해 밤새 눈에 불을 켜고 위시리스트를 채우거나, 순식간에 집 앞에 쌓인 택배 상자를 노려보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소유의 욕망은 그 범위가 넓고도 다양했다. 패션은 물론이고 식품, 가전, 좋다고 `들었던` 잡다한 아이템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하기를 반복했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충동적으로 구매한 냉동식품들과 거대한 가구를 부둥켜안고 후회했다.

<쇼핑을 줄이고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는 대신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을 좋은 소재와 클래식한 실루엣의 디자이너 제품을 주로 구입한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디자이너 피비 필로의 셀린 컬렉션.>

어설프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고 연습한다. 미니멀한 삶에 익숙해지며 패션 관(顴) 역시 조금 바뀌었다. 초기엔 적게 소유하는 미니멀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보다 단순한 삶과 스타일을 희망하는 일에 가까워졌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의 저자 에리카 라인은 미니멀 라이프는 무조건 버리고 줄이는 삶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덜 중요한 것은 지워버리는 삶이라고 말한다. 종종 나는 위시리스트에 들어앉은 그들을 바라보며 내게 왜 이들이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왜 내가 그들을 원했는지를 돌이켜본다. 어느 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내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정말 필요한 물품은 구매한다. 그러나 갑자기 눈에 들어온 프라다 새 시즌 코트, 유려한 앞 코가 매력적인 보테가 베네타 부츠, 놀랍도록 근사한 향을 지닌 바디 제품 등이 종종 보내는 유혹의 손짓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약한 나는 금방 매혹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금방 다시 조금 멀어질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삶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쇼핑하는 횟수를 줄이는 일이 내 마음을 차지한 복잡한 언어를 소거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치관을 뒤흔드는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SNS 속 화려한 삶을 열망하는 속세의 언어를 잠시 잊고 단순한 상념에 빠져보는 것은 이 불투명한 욕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물건에 대한 날 선 소유욕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엉뚱한 곳에서 기인한 스트레스가 불러온 욕망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인들도 놀라는, 패션 에디터라기엔 단촐한 옷장. 이 외 겨울 옷 몇 벌이 내가 가진 옷의 전부다.>

현대 사회의 구성원이자 패션 에디터이기에 나는 여전히 소비를 즐긴다. 미니멀 라이프에도 단계가 있다면 초보 수준으로, 꾸준히 연습 중이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게 목표가 아님을 잊지 말아 달라. 다만 쇼핑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과 함께 그만큼 생산되고 버려지는 것들, 패스트 패션은 곧 환경 오염과 직결된다. 내가 소유했던 것들이 추억 가득한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이젠 원치 않는다. 집을 정리하거나 이사 준비를 할 때 짐을 잔뜩 버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버리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잔뜩 짊어졌던 시간에서 건너와 이제 우리는 책임을 질 때가 되었다. 덕분에 옷장은 이전보다 단출해졌지만, 놀랍게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옷만 남았다. 나에게 어울리는 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노련함도 생겼다. 시간이 흘러도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하고 간결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었다. 여기에 자연 친화적인 공법으로 제작된 질 좋은 소재의 옷이라면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연령과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블랙 재킷, 입으면 입을수록 멋을 더해가는 데님 팬츠,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할만한 워치 앤 주얼리와 가방……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근사한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질리지 않을 좋은 액세서리들만 최소로 구입한다. 거의 10년째 매일 착용 중인 제품들. 클래식한 스타일이라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브랜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최근 눈에 띈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의 비건 만두백은 멕시코 데세르토사의 선인장 가죽으로 제작되었다. 디자인도 예쁘고 실용성이 좋아 자주 메고 다닌다. 낫아워스의 설명에 따르면, 분해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이 가방에 쓰인 선인장 가죽은 약 1,200일 안에 최대 32%까지 생분해된다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 당연한 순리를 우리는 잊고 산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소비는 인간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는 물건이라면 언젠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구매하는 것이다. 이 또한 내 미니멀 라이프의 한 방식이다.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무언가를 소유하는 일에 더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내 삶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도 작아졌다. 결국 미니멀 라이프를 연습하는 일은 밖으로 향하는 각종 형태의 에너지를 나를 돌보는 데 쓰는 일 같다. 나를 들볶는 욕망과 거기에 소요하는 에너지의 크기를 줄이고 나와 내 소중한 존재들에 집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