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다섯바퀴는 돌았을 것 같은 클래식 자동차, 최소 두명의 주인을 거쳤을 것 같은 손목 시계. 새것보다 누군가의 손을 탄 것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빈티지에 빠진 에디터 박찬용과 함께 그가 소유한 사적인 빈티지를 들여다 보았다.
읽고 묻고 구경하는 게 직업입니다. 2022년에는 책을 쓰며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박찬용 프리랜스 에디터
내 첫 차는 1996년식 프라이드였다. 경기도 부천 중고차 단지에서 10만 원을 깎아 45만 원에 샀다. 적산거리는 24만km.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낡아 있었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차가 예뻐 보였다. 언젠가는 이 차를 전부 뜯어 고치리라 결심했었다. 그러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헌 차로 강남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일을 겪었다. 한번은 미팅하러 간 건물에서 "짐 싣는 차는 여기 들어오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오래된 내 차 연대기
그 차를 타며 깨달은 게 있다면 자동차의 기본 틀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기름을 폭발시켜 동력을 얻고, 핸들을 돌려 방향을 맞추고, 멈춰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는 것 말이다. 이후로도 나는 계속 20년 이상 된 차를 탔다. 옛날 디자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손으로 그린 티가 나는 외형에 구조도 조금 더 직관적이다. 90년대의 E클래스와 랜드로버를 거쳐 잠깐 00년대 차로 외도(?)했다가 지금은 다시 90년대에 생산된 차를 탄다. 사진 속의 차 역시 1997년식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 직렬 4기통 지연흡기 휘발유 엔진, 수동변속기.
그냥 예뻐서 오래된 차를 타기엔 신경쓸 게 많다. 중고차와 신차는 돈이 들어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중고차를 타보면 신차에 붙어 있는 가격의 디테일을 체감하게 된다. 신차는 가격이 조금 더 나가는 대신 약 3년/몇만Km 보증을 해준다. 즉 신차의 가격은 물건 가격 외 각종 부대 비용의 합이라 볼 수 있다. 신차의 감가상각은 부대 비용이 빠져나갔음을 뜻한다. 오래된 차는 다르다. 나의 경우 중고차를 구매하는 금액을 일종의 선수금이라 여긴다. 신차와 달리 중고차는 차를 구매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소한 오일 3종은 갈아야 한다. 오일을 교체하러 카센터에 들어갔다가 추가 정비 소견을 들으며 한숨 쉬는 상황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다이얼을 돌리는 빈티지의 질감
그런데도 차령 20년 이상의 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감촉 때문이다. 요즘 출시되는 차와 달리 오래된 차의 내부 기능은 모두 버튼으로 작동한다. 온도를 올리려면 다이얼을 돌려야 한다. 라디오 채널은 6개까지 저장할 수 있는데, 이유는 버튼이 6개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버튼이 기능의 전부다. 컴퓨터화된 요즘의 자동차처럼 특정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폴더를 열듯 몇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직관적 감촉이 상당히 상쾌하다. 전자 장비가 없는 차라서 주행 질감도 다르다. 종일 스마트폰과 PC 모니터 속 세상에 묻혀있다 보면 나는 누구이고 내가 몸담은 세계는 어떤 곳인지 회의가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쇠문을 열고 들어가 시동을 걸면 현실이 온몸의 감각으로 밀려들어온다.
처음 오래된 차를 선택하는 데는 허영심도 한몫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그저 예쁜 걸 가지고 싶었다. 그걸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드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일말의 지식도 관심도 없었다. 어떤 카센터를 만나는 게 유리한지, 자동차 보험을 가입할 때 견인 옵션을 10km로 하면 좋을지 50km로 하면 좋을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나름의 대가를 치러가며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 차를 조금씩 고쳤고, 누가 봐도 낭비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지출에 시간까지 들여 경험을 샀다. 그 경험의 결과가 지금의 차다.
이 차에도 문제가 있다. 촬영하는 날에는 브레이크등 하나가 점등되지 않았다. 오디오도 켜지지 않았다. 전동시트 조절 장치가 고장나서 시트가 앞으로만 당겨질 뿐 뒤로 젖혀지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무릎을 한껏 굽혀 운전해야 했다. 문제는 고치면 된다. 촬영이 끝나고 단골 센터에 들렀다. 이제 브레이크등도 카세트 플레이어도 잘 작동된다. 고장난 차는 걱정덩어리지만 고쳐진 차는 쾌감을 준다. 언제 어디서나 문제는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반드시 고칠 수 있다. 차를 통해 나는 그걸 배웠다. 돈 주고 살 만한 교훈 아닌가. 수리가 끝난 날 오랜만에 테이프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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