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옆 동네 사는 언니네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8살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다 큰 어른에게 갑자기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 게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반응과 달리 아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신호대기로 차가 잠깐 멈췄을 때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만 다 큰 거 같은데?”

원하는 대답이 있는 것 같았지만,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일단 던진 말에 돌아오는 녀석의 대답이 더 기막혔다.

“에이…… 더 커야지.”

뜻밖의 대답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내가 더 크면 뭐가 되고 싶을까 생각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좀더 커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그제야 수긍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잊고 살았던 내 꿈은 아이가 상기해준 덕분에 다시 노력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지면을 빌려 하려는 이야기는 어른의 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메모`에 관해 말하려 한다. 글의 초반을 흥미로운 대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메모 습관 덕분이다. 차 안에서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를 잊지 않고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어서다. (나는 내 기억력을 믿지 않는다. 돌아서면 까먹기 일쑤라서 반드시 적어둔다.) 모든 대화를 기록해놓진 않지만 이렇게 글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건 적어야 한다. 이젠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 절대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다. 어렵지 않다. 늘 들고 다니는 휴대폰 메모장에 써놓으면 그만이다. 만일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 있다면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음성 녹음을 하면 된다. 간혹 어떤 메모 어플을 쓰는지 질문을 받는데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인지라 될 수 있으면 다이어리에 펜으로 적거나 스마트폰 기본 메모장을 사용한다. 기록을 번거롭게 하는 일을 피하려고 메모장을 따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기억해야 할 것을 닥치는 대로 다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마련해 워드나 엑셀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일본의 카피라이터 히카타 요시아키는 메모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으로 틈날 때마다 남이 하는 말을 적어볼 것을 추천한다. 완벽한 문장을 받아적으려 하기보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단어나 기호 등을 활용해 간단히 적으면 되고, 그것을 활용할 때 제대로 자기식으로 재구성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나는 대화나 타인의 말을 적어두었다가 유용하게 써먹는다. 꼭 어떤 글에 직접 쓰이지 않더라도 메모는 영감이 되어준다.
한번은 카페에서 40대로 보이는 여성 셋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요즘 우울하단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여성이 “언니, 그럴 땐 유튜브에서 <신서유기>를 찾아봐요. 정말 우울할 틈을 안 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도 <신서유기>를 즐겨봤기에 그 대화에 공감했다. 동시에 사소하고 대단하지 않은 해법이 좋아서 메모해뒀다. 언젠가 나는 소설에 이 대화를 넣어볼 생각이다.

최근엔 “지금 내 나이가 60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친정엄마의 말을 메모했다. 40대 초반인 딸에게 70대 중반의 노모가 60만 되어도 좋겠다고 한 말은 잠들어있던 어떤 마음을 각성시켰다. 이런 대화들을 쌓아두면 글을 시작할 때 느끼는 막막함을 덜 수 있다. 글쓰기 강의에서 학생들이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내가 추천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대화로 시작하기다.
히카타 요시아키는 타인의 말이나 대화를 적기 힘든 상황이라면 뉴스를 메모해보라고 한다. 실천도 쉬울뿐더러 꾸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한두 번 해서는 습관이 될 수 없다.) 카피라이팅 강의에서도 빼놓지 않고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내가 보여주는 PPT 자료를 휴대폰으로 찍기만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땐 가급적 노트에 직접 적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직접 써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또 들은 내용을 요약해서 적는 과정을 통해 편집 기술이 늘어서다.

즉 나에게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는 내용을 가려 적는 것은 훨씬 능동적인 기록 활동이며, 강의를 소화하는 능률을 높여준다.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해두면 보물처럼 활용할 날이 반드시 온다. 순간의 귀찮음만 잘 견디자. 기록이 습관이 되면 내 일상과 글은 몇 배 더 윤택해질 것이다.

엑셀을 이용해 메모를 정리할 때는 월, 계절, 날씨,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이벤트 등 큰 주제로 시트를 나눈다. 활용할만한 문장을 발견하면 시트에 분류해 정리한다. 책이나 잡지, 영화, 드라마 대사에서 만난 좋은 문장들은 꼭 시간을 들여 기록해두어야 한다. 메모는 글 쓰는 사람의 무기와 다름없다. 무기 창고는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급하게 문장을 써야 할 때 시간을 아껴주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읽는 것만으로 생각을 환기시켜준다. 소소할 수 있어도 나만 활용할 수 있는 소스가 일상 곳곳에서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이를 메모해 놓아야 감각적인 글을 완성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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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쓰는 법> <문장 수집 생활> <편애하는 문장들>등 책을 썼고 홀로 독서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8살 아들과 11살 고양이를 육아 육묘 중
이유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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