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과 캠핑을 즐겨하는 이재위 디지털 디렉터가
자연에서 바라본 풍경과
그 안에서 탐구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문밖의 생활만큼 문 안쪽의 더 나은 삶을 지향합니다. 《아웃도어》, 《고아웃》 잡지사에서 일했습니다.
이재위 <GQ Korea> 디지털 디렉터
수직의 길
1년 전부터 실내 클라이밍 센터에서 강습을 받고 있다. 강습이 없는 날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센터를 찾는다. 첫날은 소낙비를 맞은 듯 몸이 무거웠다. 수개월이 지나 이제는 제법 손가락에 힘이 생겼다. 균형 감각도 좋아졌다. 작은 홀드 위에서 휘청이다가도 테이블 모빌처럼 중심을 잡고 선다.
클라이밍이 끝나고 때때로 맥주를 함께 마시는 임동진씨의 말에 따르면 춥긴 해도 겨울 산이 볼더링을 하기에 좋다고 한다. 수분이 날아간 바위에선 손과 발 디딜 자리를 더욱 섬세하게 감지할 수 있다는 것. 간혹 클라이머들이 움켜쥔(다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요철은 옷에 붙은 빵 부스러기만큼이나 작다.
(*볼더링: 볼더링이란 암벽 등반의 한 장르로 로프 없이 바위 덩어리를 오르는 행위)
나만의 달리기
몇 년 전에는 트레일 러닝에 빠져 있었다. 등산이나 하이킹도 좋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산을 경험하고 싶었다. 매일 듣는 음악도 어떤 의자에 앉아서 듣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르게 마련이다. 곧 산 달리기의 깊은 세계에 매료됐다. 달리기를 기록과 경쟁이 아닌 그 자체로 즐기던 때였다. 내가 만난 트레일 러너들은 기록보다 완주를 자랑스러워하고, 경쟁보다 협동을 중요시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본 투 런』 등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달리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용기를 내 참가한 트레일 러닝 대회는 특별했다. 마라톤 대회에 비하면 규모도 참가자도 적어서 산속 작은 축제 같았다. 지리산에서 열린 UTMJ가 첫 대회였고, 두 번째 대회였던 KOREA 50K 완주 후 스마트폰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산속은
작은 축제
‘네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날 때쯤 힘들어서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UTMJ에서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그때부턴 그와 함께 달렸다. 오직 둘이서 무거운 어둠과 미로 같은 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경험이 더 많았다면 열 명쯤 되는 나 자신과 함께 달렸을 것이다.’
자연에서 경험은 길잡이이자, 식량이자, 도구와 같다.
설국에 가다
겨울에는 하이킹과 백컨트리 스키를 다녔다. 정설된 슬로프는 어딘가 지루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교외의 전철 통근자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결국 눈이 오길 기다렸다가 동계 야영 장비와 스키를 짊어지고 선자령으로 향했다. 문을 닫은 지 오래인 고성 알프스 스키장의 버려진 슬로프는 무료 놀이기구였다.
음료수 자동판매기와 자동차를 덮어버릴만큼 눈이 쌓인 일본 아키타로 백컨트리 스키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아키타는 매년 겨울, 스키를 즐기러 온 이방인들로 작고 기분 좋은 소란이 인다. 수백 년 된 나무를 베어내고 만든 스키장이 아닌 진짜 설국이었다. 배낭에 GPS, 휴대용 무전기, 조난 신호 장비를 챙겨 고마가타케 산으로 향했다. 곤돌라나 설상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눈길을 걸어서 올랐고 내려올 때는 나무와 바위를 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일 때 가장 완벽하다.
기분 좋은
소란이 인다.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
서핑과 오토캠핑을 10년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선택한 신혼여행도 호주 브리즈번에서 출발해 시드니까지 동남부 해안을 따르는 서프 트립이었다. 밴으로 1500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구글 맵에 체크해 둔 서핑 포인트에 들러 서핑을 하고 해가 지기 전 캠핑장을 찾아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등 해외로 출장을 떠날 땐 서핑 보드를 꼭 챙긴다. 업무가 끝나면 차를 대여해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을 찾는다. 서퍼들로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바다로 나아가며 새벽 공기를 마시는 것, 바다를 부유하며 마을을 바라보는 것, 그곳을 이루는 돌과 모래와 너울을 관찰하는 것, 그 영혼이 여전히 파도를 타고 있는 전설적인 서퍼들과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 서핑은 여행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바다를
부유하기
어떻게 오를 것인가
클라이밍부터 트레일 러닝, 하이킹, 스키, 서핑까지. 이쯤 되면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너무 많은 걸 하고 있지 않나? 그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낫겠어’. 아버지는 내가 허둥지둥할 때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씀 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웃도어 영역에서 나의 관심은 조금씩 변하며 넓어졌다.
약간은 겉멋에 (타투를 하고 피부를 검게 태우고 머리도 길러 보았다) 흥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작고 나약할지언정 자연의 일부로서 거대한 산과 바다를 탐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변한 적은 없다.
클라이밍은 바위를, 트레일 러닝은 산길을, 하이킹은 능선을, 서핑은 파도를 따라서 그것들을 이해하게 하며 때때로 연결한다. 클라이밍을 하려면 등반에 적합한 암벽에 닿기까지 먼 길을 걸어야 하고, 외진 해변에서 머물며 서핑을 하려면 그곳에서 밤을 보낼 장비와 지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웃도어 활동은 다양한 나라의 요리 문화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그렇게 로제 떡볶이가 탄생했듯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한 단계 나아간다. 래프팅과 백패킹을 결합한 팩래프트(Packraft), 트레일 러닝과 울트라 라이트 하이킹을 결합한 패스트패킹(Fastpacking)처럼 새로운 형태의 아웃도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나 오를지가 아니라, 어떻게 오를지를 고민하는 자다.
장비와 지혜
자연에서 배운 것
아웃도어의 즐거움 중 하나는 삶의 태도에 대해 자연에서 답을 얻는 것이다. 한번은 양양에서 친구들과 서핑을 하면서 해가 지도록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키가 넘는 크고 힘센 너울이 밀려오던 날이다.
보드에 앉아 해변 쪽을 바라보니 구옥의 지붕 뒤로 거미가 내리는 설악산 자락이 보였다. 길가의 가로등이 눈치 게임을 하듯 짧은 간격으로 불을 밝혔다. 어느 순간 눈으로는 파도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을만큼 어두워졌다. 파도가 부서지며 남기는 공기와 소리에 집중했다. 보는 것에 의존하지 않으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히려 파도의 피크 더 가까이서 그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한밤에 인수봉에 오르던 날이 떠올랐다. 고도를 알 수 없는 단애의 끝. 때때로 어둠 속에서 안도감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인생의 어두운 나날을 지날 때 그날 그 밤들의 자세를 떠올릴 것이다.
보는 것에
의존하지 않기
아웃도어는 산을 오르고 파도를 타는 격렬한 행위만은 아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모닥불만으로 요리를 하거나, 식물을 가꾸거나, 나무를 깎아서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모든 행위가 아웃도어다.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작업. 나는 그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과 만나길 좋아했다. 그들의 투박한 손에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였다.
2016년 가을에 만난, 가평에서 쪽과 양파, 홍화 등을 이용해 천연 염색을 하는 윤영숙씨는 감물 들인 천을 빨랫줄이 아니라 너럭바위에 널었다. 그 위에 조약돌을 올려두고 일조량의 차이로 소기의 무늬를 얻는다고 했다. 마른 천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벌레가 지나간 흔적이 있고 비가 고여 있던 자리도 보였다. 사진으로 치면 일종의 장노출 기법을 쓴 셈이다. 단순함이 시간이 깃들 자리를 마련해주었구나 생각했다. 기다림은 때때로 괴롭지만 자연은 모든 것을 시간으로 증명한다. 자연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벌레의 움직임, 파도의 오고감, 천천히 쌓이는 눈처럼 내가 몸을 움직여 누린 것들이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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